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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부실공사 사고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만년홍사원 2020. 5. 28. 07:51

1970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와우지구 시민아파트 15동 건물 전체가 붕괴한 사건입니다.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건이며, 69년 12월 26일 준궁한 후 불과 4개월 만에 일어난 붕과사고입니다.

와우아파트

조사 결과 아파트의 받침기둥에 철근을 제대로 쓰지 않아 기둥이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때문으로 밝혀졌으며, 아파트 부실 공사에 대한 인책문제가 국회에까지 비회되어 당시 서울시장 김현옥이 물러나는 사태까지 빚었습니다.

당시 서울은 급격한 도시 팽창으로 말미암아 전국 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인구가 급증했지만, 그에 비해 주택 상황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서울시민들은 소위 판자촌이라 불리는 무허가 건축물에서 지내게 되었고, 당시에도 이러한 주거 형태가 빠르게 늘어나는 중이었습니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고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 정부와 지자체가 시민 아파트 건설이라는 정책을 시행하였고, 서울시 각 구청들은 판자촌 등 무허가 건출물의 현황을 파악한 후 대부분 철거하고 시민아파트를 짓게 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건설된 시민 아파트 중에 바로 와우 아파트도 있었습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당시 공무원들의 비리 행태도 심각했기 때문에 시민 아파트 건설에 주어진 예산이 건설업체에서 또 하청으로 이어지면서 공사비가 부족하게 됩니다. 이마저도 공사를 맡긴 하청업체가 무면허 업자인게 밝혀졌고 이는 곧 부실공사로 이어지게 됩니다.

와우아파트 붕괴사건

철근 70개를 써야 할 기둥에 철근 5개를 쓰고 만들게 되며, 건축물을 세우는데 필수인 지반공사 또한 생략하게 됩니다. 콘크리트 역시 시멘트 함량이 적어 자갈 섞인 모래 반죽이나 다름이 없었고, 공사기간 또한 정부와 서울시 압박에 6개월 안에 아파트를 완성하라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던 중 와우아파트는 1969년 12월 26일 완공되어 입주가 시작되었고, 그때부터 이미 문제의 하창 무면허 업자가 시공한 13~16동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14동은 콘크리트 받침 기둥이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나 붕괴시점 (70년 4월 8일)에는 주민이 대피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와우아파트 사고

차가운 겨울이 지나고 해빙기가 되면서 땅이 녹자 지반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기둥도 내려앉으며 결국 아파트가 산 아래로 넘어가듯이 무너져 아래에 있는 판자촌을 덮치게 됩니다. 33명이 사망하고 39명이 중경상을 당하는 희대의 부실공사  사고. 바로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입니다.

와우공원

참고로 와우아파트의 와우는 영어의 WOW 뜻이 아니라 누을 와(臥)에 소 우(牛)자가 합쳐진 한자어 입니다. 아파트 위치가 와우산 기슭에 위치해서 지어진 명칭이며, 와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